우리는 종종 문장을 정확히 해석해야 한다는 부담에 사로잡힌다. ‘이 작가는 이 말로 어떤 의도를 담았을까?’, ‘나는 그 뜻을 제대로 읽어낸 걸까?’ 같은 질문이 해석을 막는다. 하지만 문장은 읽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것이 된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를 벗어난 해석이라 해도, 그 해석이 지금의 나를 움직였다면 이미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이야기를 풀어본다. 첫째, 작가의 의도에서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문장, 둘째, 감정이 만든 해석, 그것도 진짜 해석이다, 셋째, 해석은 결국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1. 작가의 의도에서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문장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늘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문학 작품을 읽을 땐 마치 수능 문제를 풀듯, ‘이 문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따지며 읽었다. 내 감정은 배제하고, 최대한 ‘정확하게’ 해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랬기에 어떤 문장을 읽고 눈물이 날 때도, ‘이건 작가가 의도한 감정은 아닐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렇게 해석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다시 읽은 한 시에서 달라진 내가 보였다. 그 시는 내가 고등학생 때도 읽었던 시였지만, 이번엔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예전엔 외면했던 슬픔이 이번엔 깊이 다가왔고, 그 슬픔이 내 지난 시간을 위로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작가의 의도와 내 해석 사이의 거리가 반드시 문제인 건 아니라는 걸. 오히려 그 거리는 독자가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는 여백이 된다. 그 여백이 있었기에 나는 그 시와 내 삶을 연결 지을 수 있었다.
문장이 위로가 되는 순간은 종종 그 의미가 작가의 손을 떠났을 때 온다. 의도를 벗어난 해석일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유효하다면 그건 ‘틀린’ 해석이 아니라 ‘내’ 해석이다. 문장은 언제나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태어남은, 오히려 작가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독자의 삶을 건드린다.
2. 감정이 만든 해석, 그것도 진짜 해석이다
사람들은 종종 감정적인 해석을 ‘왜곡’이라 말한다. 정확하지 않다고, 본래 의미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나 역시 한때 그랬다. 어떤 문장이 나를 울렸을 때, 나는 그 울림이 ‘객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부정했다. 감정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점점 알게 되었다. 감정이 만들어낸 해석도 결코 덜 중요한 게 아니란 걸. 오히려 감정이 만든 해석이야말로 내 삶에 깊숙이 닿아 있는 해석이었다.
한 번은 일기장을 뒤적이다, 오래전에 적어둔 한 문장을 발견했다.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언젠가는 맞을 거야.” 처음 그 문장을 적었을 땐 위로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땐, 그 문장이 나를 슬프게 했다. ‘아직도 아닌 것 같기 때문’이었다. 같은 문장을 읽고도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내 감정이 달라졌고, 그로 인해 해석이 달라졌을 뿐이라는 걸.
감정은 문장의 뜻을 흐리게 하는 게 아니라, 문장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해석은 정적인 결과가 아니라, 매 순간 나와 함께 변하는 움직임이다. 같은 문장도 기쁠 땐 응원이 되고, 슬플 땐 울음이 된다. 감정이 흔들리는 만큼 문장도 흔들리고, 그래서 더 살아 있다. 나는 이제 감정으로 문장을 해석하는 자신을 더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가장 잘 말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3. 해석은 결국 나를 드러내는 일이다
문장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곧 그 사람을 드러낸다. 어떤 문장에서 희망을 보느냐, 절망을 느끼느냐는 그 사람의 삶의 맥락에 달려 있다. 그래서 해석에는 정답이 없지만, 해석에는 늘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점이 문장을 읽는 일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문장을 두고, 사람마다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걸 볼 때마다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를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문장을 통해 사람을 읽게 된다.
나는 어떤 문장을 만나면, 종종 그 문장을 내 말투로 바꾸어 적어보기도 한다. 나에게 더 익숙한 언어로 바꾸는 그 과정은, 마치 내 안에서 그 문장을 소화시키는 작업 같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써낸 문장은, 이제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라 ‘나의 문장’이 된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문장을 나만의 감정, 나만의 기억으로 물들인다. 해석은 언제나 그런 작업이다. 작가의 문장을 빌려 나를 표현하는 일,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문장을 읽을 때마다 묻는다. ‘나는 왜 이 문장에서 이 감정을 느꼈을까?’, ‘나는 왜 이 말에 멈춰 섰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다 보면, 어느새 문장이 아닌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해석은 그렇게 나를 거울처럼 비추는 도구가 된다. 문장을 읽는다는 건, 곧 나를 읽는 일이다. 그래서 작가의 뜻과 달라도 괜찮다. 그 해석이 나를 이해하게 해 준다면, 그건 이미 충분히 좋은 해석이다.
마무리: 문장은 나를 통과해야 비로소 살아난다
문장이 정말로 의미를 가지는 순간은, 그것이 나를 통과할 때이다. 작가의 뜻은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고, 진짜 해석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문장을 읽고, 느끼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 그것은 나를 알고, 나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러니 다음에 어떤 문장을 만났을 때, 정답을 찾기보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지금 이 문장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로 들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