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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의 위로: 잘못 읽었기에 더 가까워진 문장

by 참바당 2025. 5. 9.

문장을 읽는 일은 곧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문장을 잘못 읽는 바람에,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느낀 날이 있었다. 그 해석이 틀렸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문장이 나를 살게 했다. 이 글에서는 그 특별한 경험을 세 가지 장면으로 나누어 나의 오독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틀린 해석이었지만, 나를 구했던 문장 / 2. 작가의 뜻과 다른 감정을 느낀 날 / 3. 오독에서 피어난 나만의 해석 이 세 가지 소제목을 통해, 때로는 정답보다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오독의 위로: 잘못 읽었기에 더 가까워진 문장
오독의 위로: 잘못 읽었기에 더 가까워진 문장

 

1. 틀린 해석이었지만, 나를 구했던 문장

내가 한창 지쳐 있던 시절, 우연히 책에서 마주친 문장이 있었다. “그 길은 끝이 아니야, 단지 쉼표일 뿐이야.” 나는 그 문장을 ‘지금 멈춘 내 삶이 괜찮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 말이 너무 필요했기에, 나는 그 문장을 스스로의 생존 허가처럼 껴안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 문장의 맥락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작가는 도전 앞에서 잠시 멈춘 사람들에게 '계속 가야 한다'는 의미로 쓴 것이었고, 내가 느낀 위로와는 결이 달랐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약간의 당황과 함께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틀리게 이해한 걸까? 그럼에도 왜 그렇게 위로가 됐던 걸까?’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 순간의 나는 그 문장을 그렇게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 방식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라고.

 

문장을 정확하게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 문장이 내 마음에 어떻게 들어왔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나는 오독을 했지만, 그 오독 덕분에 마음의 균열을 겨우 붙잡고 버틸 수 있었다. 문장의 진짜 의미보다, 내가 느낀 감정이 더 진실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문장은 단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건네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2. 작가의 뜻과 다른 감정을 느낀 날

나는 한 시집을 읽다가 울컥한 적이 있었다. 시인은 '밤하늘의 별이 쏟아졌다'는 표현으로 사랑의 환희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구절을 ‘무너지는 감정’의 비유처럼 받아들였다. 그때 나는 이별을 겪고 있었고, 별이 쏟아진다는 그 이미지가 내 감정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시인의 해설을 보고 ‘아, 이건 기쁨의 시였구나’ 하고 알게 됐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날 밤, 그 시 한 편을 통해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든, 내가 느낀 감정은 내 삶의 흔적에서 온 것이었고, 그것은 내 안에서만 피어나는 진짜 해석이었다.

 

우리는 종종 문장을 해석할 때 '정답'이라는 기준에 얽매인다. 하지만 언어는 원래 불완전한 것이고, 해석은 결국 그 불완전함을 채우는 우리만의 감정이다. 나는 작가의 뜻과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 길이 결코 틀린 길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에게 맞는 길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감정의 해석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눈물이 났다면 그 문장은 나에게 그런 문장이었고, 웃음이 났다면 그건 또 내 삶이 투영된 해석이다. 작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나는 내 방식으로 그 문장을 사랑한 셈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이제는 믿게 되었다.

 

3. 오독에서 피어난 나만의 해석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오독이 꼭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걸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오히려 오독은 내가 문장을 내 삶에 끌어들이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틀렸다’는 두려움에 숨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오독이 나만의 언어가 되어주었다.

 

예를 들어 “아무도 너를 기다리고 있지 않지만, 너는 계속 걸어가야 해”라는 문장을, 나는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그러나 원래는 독립적인 삶에 대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나 외로웠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문장에서 오히려 홀로 걷는 나를 인정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로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나만의 해석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틀렸다고 여겨질지 몰라도, 나에겐 너무나 절실한 언어였기 때문이다. 이따금 누군가에게 내 해석을 말할 때 조심스러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문장이 너를 어떻게 살게 했는지’를.

 

오독은 실수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장이 내 안에서만 가능한 방식으로 다시 태어날 때,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글이 아니라 삶의 조각이 된다. 그렇게 읽은 문장은 오래도록 남는다. 오독이었기에 가능했던 위로, 그 울림은 더 깊었다.

 

마무리

정확하게 읽지 못했기에 오히려 더 마음 깊이 스며든 문장이 있다. 오독은 때론 허용된 해석의 벗어남이 아니라, 감정이 살아 있는 해석의 방식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틀리게 읽었지만, 그 문장이 나를 올바르게 이끌었다. 문장을 읽는다는 건 결국 ‘나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걸, 나는 오독을 통해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