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익숙한 문장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써보기

by 참바당 2025. 5. 7.

익숙한 문장들은 때때로 나에게 너무 멀리 있는 말처럼 느껴졌다. 반복해서 듣고, 익숙하게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말이 내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문장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문장을 나만의 언어로 바꾸어보는 일, 그 문장을 지금의 나로, 지금의 감정으로 다시 써보는 작업을 시도했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 단계 1) 내가 오래도록 듣기만 했던 문장들, 2) 그 문장을 다시 쓰게 만든 순간들, 3) 그리고 나만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 새로운 문장들을 따라 그 과정을 돌아본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익숙한 문장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써보기
익숙한 문장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써보기

1. 오래도록 들어온 문장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듣는 문장들이 있다. “시간이 약이야”, “다 잘 될 거야”, “네가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마.” 처음 들었을 땐 따뜻하게 느껴졌지만, 반복될수록 점점 공허하게 들렸다. 마치 형식적으로 건네는 말처럼, 혹은 그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 버리는 무책임한 조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힘들거나 지쳐 있을 때 그런 말들을 들으면, 오히려 위로보단 거리감이 더 커졌다. 나에게 진짜 필요한 건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내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말들은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지, 그 자체가 틀린 건 아니었다. 너무 뻔한 문장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안에 감정을 담지 않았다. 너무 자주 들었기에 오히려 진심이 묻히고 말았다. 익숙함이 진심을 가리는 순간, 우리는 의미 있는 말조차 흘려듣게 된다. 그 문장을 다시 꺼내 보게 된 건, 그 말이 실제로 내 삶에서 증명되었을 때였다. 시간이 정말 약이 되는 걸 경험했고, 결국 모든 일이 흘러가듯 지나가는 걸 지켜봤다. 그제야 나는 익숙한 문장도 내 삶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2. 문장을 다시 쓰게 만든 순간들

문장을 다시 쓰고 싶다고 느낀 건, 어느 날 문득 내가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을 오래 끌어안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위로의 말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힘내”라는 말조차 듣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이 나에게 닿기 전에 이미 벽처럼 튕겨나갔다. 그러다 한 문장을 만났다. “당신이 견뎌낸 건 절대 당연하지 않았다.” 그 문장을 읽고 한참 동안 눈물이 났다. 그제야 나는 나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말이 아니라, 나의 감정과 정확히 맞닿는 언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문장을 다시 써보기로 했다. 익숙하지만 공허했던 말들에 나의 언어를 더해보기로. “시간이 약이야”는 나에게 “지금은 괴롭지만, 언젠가 이 고통을 설명하지 않고도 웃게 될 날이 올 거야”로 바뀌었다. “다 잘 될 거야”는 “잘 되지 않더라도, 그 끝에서 나는 분명히 다시 일어날 수 있어”로 다시 태어났다. “너는 생각보다 강해”는 “너는 약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는 중이야”라는 문장이 되었다. 내 마음에서 길어낸 해석들이 익숙한 문장을 낯설고 따뜻하게 바꿔놓았다.

 

3. 나만의 언어로 다시 써본 문장들

이제는 종종 문장을 수집하고, 그것을 다시 써보는 습관이 생겼다. 누군가의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보다, 그 안에 나의 언어를 섞어 다시 써보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다. 그때의 감정, 상황, 기억을 함께 불러내어 문장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빌려 입은 옷을 내 체형에 맞춰 수선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쳐 쓴 문장들은 더 이상 추상적인 조언이 아니었다. 내 삶과 감정이 녹아든, 다시 살아 움직이는 말이 되었다.

 

예컨대, “너 자신을 사랑해”라는 문장은 나에게 너무 뜬금없고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쓴다. “네가 지금처럼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너를 사랑하고 있어.” 그렇게 다시 쓴 문장은 나에게 훨씬 진실하게 들린다. 어느 날은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라는 말이 너무 공허해서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면, 나는 분명히 지금보다 단단해질 거야”라고 써봤다. 문장이 달라지자, 감정도 조금씩 변했다. 결국 나는 문장을 다시 써가며, 나를 조금씩 다시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마무리

익숙한 문장을 다시 쓴다는 건 단지 문장의 형태를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의 나로 살아가는 언어를 찾는 일이었고, 내 감정에 맞는 위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누군가의 말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에 말을 맞춰나가는 일. 그렇게 고쳐 쓴 문장들은 결국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들었다. 문장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지만,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나는 오늘도 문장을 다시 쓴다. 나만의 언어로, 나의 삶을 말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