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문장을 통해 길을 잃고, 또 문장을 통해 다시 길을 찾는다. 어떤 문장은 나를 붙잡아두고, 어떤 문장은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 글은 그런 문장들과의 경험을 세 가지 시선으로 나눠 풀어낸다. 첫 번째는 '어떤 문장은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에서 문장을 읽고 혼란스러웠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두 번째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장'에서는 방황 속에서 나를 알아봐 준 문장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문장 하나가 다시 걷게 했다'는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나를 일으킨 문장의 힘을 이야기한다. 문장은 정답이 아니지만, 그날의 나를 말없이 이해해주는 지도였다.
1. 어떤 문장은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문장을 읽는 일이 언제나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엔 그저 글자일 뿐이고, 어떤 날엔 오히려 마음을 더 헝클어놓는 말들이 있다. 마음이 약해져 있는 날, 위로라고 쓰인 문장은 가끔 내 불안에 소금을 뿌리듯 따갑게 다가왔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문장이, 내겐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멀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 문장은 결국 해석하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의미가 뒤집힌다.
예전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넌 성장하고 있어"라는 문장을 좋아했다. 한동안 내 메모장 첫 줄에 적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문장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나?’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계속 검열하게 되었고, 결국엔 그 말이 나를 지치게 했다. 문장이 변한 건 아니었다. 내 안의 해석이 변한 것이었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문장을 바라보면, 위로조차도 질문이 되고, 응원이 되어야 할 문장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문장을 멀리하기도 했다. 너무 예쁜 말, 너무 단정한 문장은 그때의 나에게는 상처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문장을 통해 치유를 말하지만, 치유라는 것도 준비된 마음에만 닿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문장이 복잡하게 느껴질 때, 그건 내가 길을 잃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간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길을 잃은 채로 문장을 바라보는 그 순간도 나의 일부였으니까. 정답을 강요하는 문장이 아니라, 그냥 나의 복잡함을 조용히 안아주는 문장이 필요했다. 문장이 나를 복잡하게 할 때, 나는 내 마음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2.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장
살다 보면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어딘가를 향해 무작정 걸어가는 순간들이 있다. 방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저 걷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멈추는 것이 더 무서울 때가 있다. 누군가는 그걸 열정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실은 두려움으로 내딛는 발걸음일 때가 많았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며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문득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가 이상하게 낯설게 느껴질 때가 찾아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은 날. 그때서야 비로소 ‘아, 내가 길을 잃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그 시기에 우연히 마주한 문장이 있었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아. 길을 잃은 줄 알았던 그 길이 너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을 거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문장이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흘려보낼 수 있는 흔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한 줄 앞에서 발이 멈췄다. 처음 읽는 문장도 아닌데, 새롭게 다가왔고, 그 의미가 피부를 파고들 듯 깊었다. 갑자기 가슴이 아려왔다.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났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 속마음을 정확히 알아봐 준 듯한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이건 내가 찾아낸 문장이 아니라, 이 문장이 나를 찾아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경험은 단순히 문장의 내용이 좋아서 생기는 게 아니었다. 그 문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 다시 말해 스스로가 충분히 무너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길을 잃은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마음이 낮아졌을 때에만 도달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 예전에는 너무 평범해서 무시했던 문장이었고, 아무 감흥 없이 지나쳤던 말이었는데, 그 시기에는 내 상태가 문장을 다르게 읽게 했다. 단어 하나, 쉼표 하나까지도 이유 있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어쩌면 문장의 힘이라기보다는, 나의 경험이 부여한 해석의 힘이었다.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도, 그것을 삶의 언어로 바꿀 수 있는 배경이 없다면 마음에 닿지 않는다. 책 속에는 늘 좋은 말이 넘쳐나지만, 그중에서 나를 울리는 말은 단 한두 줄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통과 방황, 혼란을 지나오며 마음속에 여백이 생기고, 그 여백에 문장이 스며들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말은 나의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좋은 문장이란, 잘 쓴 문장이 아니라, 내가 그 시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라고. 어떤 문장은 1년 전에 읽었을 땐 아무 감흥이 없었는데, 지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반대로, 예전엔 그렇게 울었던 문장을 지금 보면 아무 느낌이 없을 때도 있다. 그것은 내 삶이 계속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문장은 정지해 있고, 나는 흐르고 있다. 그래서 문장과 내가 만나는 지점은 언제나 달라진다.
길을 잃은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문장은 대체로 조용하고, 담백하며, 단정하지 않다.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내 상태를 조용히 비추어줄 뿐이다. 그래서 그런 문장은 더 깊고 오래 남는다. 나는 그 문장을 통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한 것이었지만, 그 경험은 외롭지 않았다. 문장은 나를 알아봐 주었고, 나는 그 문장을 통해 내 안에 있었던 감정을 꺼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문장을 믿는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말 한 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을 다시 살아낼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길을 잃는 시간이 길수록, 그 문장은 더 분명하게 보인다. 잃어버린 방향성 속에서 마주친 문장 한 줄이, 언젠가 다시 걸을 수 있는 용기의 씨앗이 되어준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3. 문장 하나가 다시 걷게 했다
지쳐서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말이 많을수록 마음은 더 멀어지고, 괜찮다는 말이 오히려 숨을 막히게 한다. 그럴 땐 위로도 무기처럼 느껴졌다. 말이 아니라, 말 없는 공감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딱 한 문장이, 그 모든 감정을 무너뜨렸다. “너는 이미 잘 버티고 있어.” 이 말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지만, 내 안에서 무너져 있던 벽 하나를 조용히 건드렸다.
이 문장은 누가 시도해도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그 말은 나를 다시 걷게 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용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그냥 살아볼 힘이 생겼다. 중요한 건 큰 결심이 아니라, 아주 작지만 멈추지 않는 마음이었다.
문장이 삶을 완전히 바꾸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방향을 살짝 틀어주는 일은 자주 있다. 그 문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조금 더 오래 주저앉아 있었을 것이다. 말 한 줄이 내게 준 것은 ‘괜찮아져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그냥 지금의 너도 괜찮다’는 수용이었다.
누군가는 문장을 과대평가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문장이 삶을 구체적으로 해결해주지 않아도, 마음에 아주 작고 정확한 충격을 준다는 것을. 그 충격은 때론 사람의 말보다 더 깊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문장 하나 덕분에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마무리
문장은 길이다. 어떤 날엔 길을 잃게 하고, 어떤 날엔 다시 길을 보여준다. 나는 그 사이에서 헤매기도 하고 멈춰서기도 하면서 문장을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을 땐 몰랐던 의미가, 나를 돌아온 후에야 보였다. 그래서 길을 잃는 시간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문장은 언제나 거기 있었고,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이해할 준비가 되었을 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문장 속에서 길을 잃고, 그 문장 속에서 다시 길을 찾는다. 그러니 길을 잃는 일도, 때론 하나의 방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