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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지나간 책 속 문장들

by 참바당 2025. 4. 28.

문장을 수집한다는 것은, 시간을 수집하는 일, 책 속 문장이 내게 속삭여 준 것들, 내 아카이브에 쌓여가는 작은 빛들에 관한 이야기.

내 마음을 지나간 책 속 문장들
내 마음을 지나간 책 속 문장들

 

1. 문장을 수집한다는 것은, 시간을 수집하는 일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만이 아니다.

특히, 책 속에서 마음을 꿰뚫는 한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그것을 '시간을 수집하는 일'이라 느낀다. 그 문장은 단순히 글자 몇 개의 조합이 아니다. 내가 그 문장을 만났던 시절, 그때의 온도, 냄새, 심지어 내 마음속 작은 진동까지 함께 저장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한 손에는 책을, 다른 손에는 작은 메모장을 들고 있는 편이다. 문장을, 그리고 그 순간의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 있다.

하루키의 소설 한 귀퉁이에서 만났던, 아주 짧은 구절.

"상처는 때때로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 문장을 처음 만났던 날, 나는 꽤 힘든 일을 겪고 있었다. 쉽게 넘어지지 않을 거라 믿었던 나 자신이 무너졌던 시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던 중, 이 한 줄이 불쑥 다가왔다. 마치 '괜찮아'라고, 누군가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 속 문장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한다. 어떤 사람에겐 그냥 스쳐가는 말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평생을 지탱할 문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내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 책 제목보다 그 책 안에 있던 '내가 사랑한 문장'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 문장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문장을 수집하는 건 기억을 수집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장을 넘기며 문장을 찾는다. 어쩌면 미래의 나를 위로해 줄 또 다른 한 줄을 위해서.

 

2. 책 속 문장이 내게 속삭여준 것들

책 속에서 만난 문장들은 때로 누군가가 내게 조심스럽게 속삭여주는 것 같았다. 직접적인 위로나 조언은 아니지만, 그저 곁에 있어주겠다는 작은 다짐처럼. 나는 그런 문장들 덕분에 수없이 많은 시간을 견디고, 또 앞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발견한 이 문장이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을 찾아야만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하지만 프루스트의 이 문장은 정반대의 답을 주었다. 문제는 장소나 환경이 아니라, 바라보는 내 시선이라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이 문장은 나에게 아주 조용하지만 강한 충격을 주었다.

 

또 다른 기억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에서.

"우리는 사랑할 때, 결국 자기 자신 안에 있던 결핍을 마주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힘들고 벅찬지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 이 문장은 나에게 명확한 해답을 주었다. 사랑은 환상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끌어안는 것임을. 나는 이 문장을 가끔 친구들에게도 인용했다. 마치 내가 세상에 대해 조금은 더 알고 있는 사람처럼. 하지만 사실은, 이 짧은 한 문장 덕분에 겨우 삶의 파도를 견디고 있었던 것뿐이다.

 

책 속 문장들은 그렇게 나를 일깨우고, 다독이고, 새롭게 만들어왔다. 때로는 상처를 봉합해주었고, 때로는 아프게 할 만큼 솔직했다. 그렇기에 나는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책은 언제나 내게 가장 정직한 친구였다.

 

3. 내 아카이브에 쌓여가는 작은 빛들

문장을 수집하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아카이브가 생긴다. 그곳에는 멋진 말들, 유명한 명언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어떤 건 너무 짧아서 문장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고, 어떤 건 조금은 투박하고 서툴다. 하지만 모두 나에게는 소중한 빛이다.

 

나는 매년 겨울이면 이 아카이브를 펼쳐본다. 조심스럽게 한 문장씩 읽어가다 보면,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 이 문장은 이별을 겪을 때 만났던 거였지. 저 문장은 첫 직장에 다닐 때 매일 새기던 거였지. 문장 하나하나가 나의 작은 시간표가 된다.

 

특히 이런 문장들은 잊히지 않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다."

이 말은 어떤 유명한 책의 문장도 아니었다. 작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에세이 한 구석에 적혀 있던 구절. 하지만 힘든 프로젝트를 하면서 수없이 무너질 때마다, 이 한 줄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결국 완주할 수 있었던 건, 이 작은 문장 덕분이었다.

 

책 속 문장을 모은다는 건, 단순히 글자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의 무늬, 내 마음의 결을 함께 저장하는 일이다. 그렇게 쌓인 문장들은 외로울 때마다, 무너질 때마다, 조용히 빛을 발한다. 그것은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내 삶을 한 걸음 더 내딛게 하는 작은 격려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 아카이브를 쌓아갈 것이다.

어쩌면 내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이 문장들을 다시 펼쳐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참 좋은 문장들과 함께 살아왔구나."

 

마무리

책 속 문장은 단순한 글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버텨낸 시간이고, 나를 성장시킨 다정한 손길이다. 나는 오늘도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긴다. 다시 새로운 문장,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